토니 타키타니, 혼혈아의 이름 같지만 그의 본명은 토니 타키타니가 맞습니다. 재즈 연주자인 토니의 아버지 타키타니 세이자부로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상해로 건너가 그곳에서 트럼본 연주를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세이자부로는 수상한 사람들과 어울렸다는 이유로 중국의 감옥에 갇히고 다른 수감자들이 처형되는 걸 지켜보지만 끝까지 살아남아 일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전쟁으로 가족을 모두 잃은 세이자부로는 어머니 쪽의 먼 친척 아가씨와 결혼을 하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낳은 지 3일 만에 죽고, 세이자부로는 아이에게 토니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특이한 이름 때문에 토니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만의 세계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세이자부로는 연주 때문에 자주 집을 비우고 토니는 혼자서 살아가는 법에 익숙해집니다.

졸업을 하고, 직업을 가지고, 넉넉한 삶을 살게 됐지만 토니는 여전히 혼자입니다. 그에게 고독은 마치 자신의 일부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몇 명의 여자와 잠깐씩 사귀어보긴 했지만 혼자인 게 편한 토니는 결혼 같은 건 생각이 없습니다. 이런 그에게 어느 날 에이코라는 젊은 여자가 나타납니다. 일 때문에 처음 만나게 된 그녀의 모습을 본 토니는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다섯 번째 데이트에서 그녀에게 청혼을 합니다. 만나던 남자가 있던 에이코는 토니가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는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살아왔는지를 듣고 그의 마음을 받아들입니다.

옷맵시가 뛰어난 에이코와 토니의 결혼생활은 나무랄 것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고독이란 감옥에 갇혀 있던 토니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감옥에서 풀려난 죄수가 그러하듯이 자신에게 주어진 행복을 처음에는 불안해합니다. 다시 고독이라는 감옥에 갇힐까봐 두려워하던 토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예전의 기억들은 잊고 행복한 날들을 살아갑니다.

그녀와 비슷한 여자를 찾아 그녀의 옷을 입혀보지만 그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 오히려 그녀가 남기고 간 옷들은 유령처럼 그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듭니다. 시간이 지나고 그녀의 기억이 모두 잊혀지지만 어느 날 잠깐 동안 그녀의 옷을 입었던 여자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고요한 일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갑니다. 토니는 자신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에이코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여자 역시 자신의 세계에서 살아갑니다. 두 세계는 어쩌면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조용한 오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일상은, 시간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갑니다.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기억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