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여전히 그리고 끊임없이 듣게 되는 말입니다. 살아있는 동안에 한번쯤은 사랑의 열병을 앓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순순했던 시절엔 누구나 사랑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장담을 합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데 다른 무엇이 필요하겠으며, 그 누구도 우리의 사랑을 갈라놓을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나이를 먹어갈 수록,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아갈 수록,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긴 세상은 사랑만으로 살아가기엔 너무나 복잡하고 어려운 곳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른 여섯의 순박한 시골청년 석중에게 어느날 천사같은 그녀가 나타납니다. 서울에서 새로 온 다방종업원 은하, 석중의 눈에는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자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은하는 다방에서 차배달을 하고 밤이면 단란주점에서 손님들과 함께 술을 마시기도 하는 여자입니다.

석중은 은하를 보기 위해 매일 다방으로 출근을 하고 그녀를 쉬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티켓을 끊어 그녀를 불러내기도 합니다. 은하는 석중의 순수함에 끌리지만 착한 그에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애써 그의 마음을 외면합니다. 그렇지만 결국 석중에게 마음을 열고 그의 사랑을 받아들입니다. 노총각 석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를 맞이한 행복한 신랑이 됐고 두 사람의 앞날엔 행복만 있을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은하의 옛남자가 석중과 은하를 찾아오고 두 사람의 행복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석중은 은하를 위해 자신의 전재산을 들여 은하의 옛남자를 떼어놓지만 은하는 편지 한 통을 남긴채 석중의 곁을 떠납니다. 은하를 찾아 헤맨지 1년, 은하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소식과 함께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됩니다.

솔직히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너무나 순진해서 때론 바보처럼 보이는 석중을 보는 것도 편하지 않았고, 약은 체 했지만 결국 평범한 여자인 은하를 보는 것도 편하진 않았습니다. 차라리 석중이 필리핀에 가서 신부감을 데려와 결혼을 하고, 은하는 석중의 돈을 노리고 거짓 사랑을 나눴다면 오히려 맘이 편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랬다면 그건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 되겠지만 말입니다.
어쩌면, 이제는 사랑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에 <너는 내 운명>이 불편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이미 잃어버린 것들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한 질투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안에 불이 켜지고,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은 애써 태연한 척하고 일어서서 밖으로 나섭니다. 그리고 한 때는 자신들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