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가 발생한지 4년이 지났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충돌했고 곧이어 다른 비행기가 옆 건물에 충돌해서 미국의 자존심이라는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무너져내렸습니다. 그 장면은 전세계에 생중계됐고 사람들은 경악했습니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자랑하고 사랑하는 조국의 심장이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미국인들에게는 이제 9.11 이전과 그 이후라는 새로운 기준이 생겼습니다. 이 믿을 수 없는 사건은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화씨 9/11>을 통해 미국 정치권의 모순과 부조리를 폭로하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빔 벤더스 감독은 보다 부드럽고 안타까운 시선으로 9.11 테러 이후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랜드 오브 플렌티>는 어쩌면 두 명의 이상주의자들에 관한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아름답고 위대한 조국인 미국이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 폴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조국을 지키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도와주지 않지만 혼자서 LA시내를 감시하고 아랍인들을 잠재적인 용의자로 보고 추적합니다. 폴에게 있어서 세계무역센터의 붕괴는 자신의 자존심의 붕괴이자 미국의 자존심의 붕괴입니다. 조국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폴입니다.

선교사인 부모님 밑에서 자란 라나에게 참을 수 없는 일은 세계무역센터의 붕괴가 아니라 그 순간 무너져내리는 건물을 보면서 환호를 지른 사람들이 바로 자신의 친구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테러범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인데 미국의 상징이 무너지는 순간 너나할 것 없이 환호를 질렀다는 사실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미국을 싫어한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믿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엄마의 죽음 이후에 다시 찾은 조국, 풍요의 땅에서 그 누구도 빈민들에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라나에게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라나 역시 폴과 마찬가지로 상처받은 존재입니다.
그렇지만 이상과 망상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폴은 이상주의자이기도 하지만 망상에 빠진 위험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너진 미국의 자존심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라면 모든 중동인들을 감시하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아랍인들이란 조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암적인 존재에 불과합니다. 조국이 위험에 처해있고 테러의 위협을 받고 있는데 누구도 그걸 느끼지 못하는 현실이 그에게는 못마땅하게 느껴질 따름입니다.
결국 폴은 하산의 고향인 트로나에서 자신의 망상의 실체를 만나게 됩니다. 자신이 두려워하던 것들의 실체와 그렇게 지키고자 했던 조국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기가 보살펴줘야 할 라나에게서 상처를 치유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