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정말 축복받은 세대라고 말이죠. 76년을 주기로 지구를 찾아오는 헬리혜성을 볼 수 있었고,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 그리고 2002 월드컵까지, 자잘한 세계행사는 더 말할 것도 없겠죠. 이런 것들을 모두 볼 수 있다는 게 엄청난 행운이라고 말입니다. 하긴 그렇긴 하죠.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아마도 우리 세대가 끝나기 전까지는 다시 우리나라에서 열리기는 힘들 테니까요.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들떠 있던 80년대를 기억해 보면 어느 어두운 오후, 시골인데도 신문 호외가 나왔던 날이 생각납니다. 대학생들이 엄청난 데모를 해서 북한이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들렸고, 누가 누군지 모르지만 민주적인 방법으로 대통령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었죠. 겨울밤에 사과봉지를 만들면서 삼청교육대니 어쩌니 하고 어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도 나는군요. 학교에서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봤던 기억도 나고, 아시안 게임 구경한답시고 서울로 놀러 갔던 일도 기억납니다. 뭐가 옳고, 뭐가 좋은 건지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이었죠.

                                                         
평행선을 그릴 것 같던 두 사람도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아니 잡고 싶다는 생각 앞에서 결국 하나가 됩니다. 용의자를 잡으면 무조건 구타해서 자백을 하게 하던 박두만은 유력한 용의자 박현규를 잡고 증거가 없어서 안타까워하게 되고 용의자를 구타하는 걸 보며 비웃던 서태윤은 증거고 뭐고 필요 없고 때려서라도 자백만 받아내면 그만이라고 중얼거립니다. 방법이야 어찌됐건 온통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결국 모두다 알다시피 여전히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그나마 대부분의 사건들은 공소시효가 지나서 설사 이제와서 범인을 잡는다고 해도 기소를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지금, 사람들은 다시 그 시절을 떠올립니다. 살인을 추억하게 된 거죠.
영화가 끝나고 극장에 불이 켜질 때 도대체 누가 범인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과연 도망간(풀어준?) 박현규가 범인이냐고 같이 온 사람들에게 고개를 쳐들고 묻더군요. 그렇지만 누가 알겠습니까, 박현규가 범인이었는지 아닌지를...

감독은 그런 말을 하더군요. 이 영화는 미스터리 추리물이 아니라 시대물이라고, 살인을 추억하는 게 아니라, 범인을 못 잡은 형사들을 질책하는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시대를 기억하고, 그 시대를 질책하는 거라고 말이죠. (또 다른 살인사건이 일어나던 밤, 형사반장이 급하게 전경들을 출동시켜 달라고 하지만 시내에 시위 진압하러 모두 나가서 없다고 하는 장면이 나오죠. 또 잠깐 지나가는 장면으로 조용구 형사가 데모대를 진압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세월이 흐른 후 첫 번째 살인이 일어났던 곳을 범인이 다시 찾습니다. 그리고 그 범인을 본 아이가 말합니다. 아주 평범한 아저씨라고. 아주 평범한 아저씨...

시대를 추억하던, 살인을 추억하던 영화는 끝이 났습니다. 범인은 여전히 잡히지 않았죠. 그렇지만 눈물을 뚝뚝 흘리며 범인을 잡기를 갈망하던 형사들의 눈빛은 앞으로도 한동안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미치도록 잡고 싶어 하던 그들의 눈빛이 말입니다.